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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초이스[13호] 장마당 세대: 북한의 변화를 만드는 북한 밀레니얼의 이야기

2018-03-30
조회수 8671

장마당 세대: 북한의 변화를 만드는 북한 밀레니얼 이야기


아쇼카에서 일하며 북한이탈주민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아쇼카 펠로우 단체이자 북한이탈청소년과 북한이탈주민 자녀를 위한 학교인 ‘여명학교’의 졸업생으로, 만났을 당시에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2시간 가량의 만남 동안 그녀는 북한을 떠나게 된 경위부터 제3국에서 일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 예상치 못하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은 이야기, 그러다 남한으로 오기까지의 긴 여정에 대해 설명했다. 그 엄청난 여정에 대해 들으며 나와 동료가 할 수 있던 말은 감탄사뿐이었다. 그녀는 내 주변의 누구보다 놀라운 경험을 했으며, 누구보다 많은 역경을 뛰어넘었고, 이를 통해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또 생과 사를 넘나드는, 그럼에도 평범성을 가진 삶의 여정과 그러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지근거리에 있었다는 사실은 소위 정상적인 삶이라는 것을 규정하고 한정했던 빈곤한 상상력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 만남 이전까지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갖고 있던 인식은 매우 빈약한 것이었다. 이들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기보다는 이들이 사회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이 한국 사회에, 또 국제 사회에 존재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간과했다. 이러한 무지가 무색하게도, 한국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2002년부터 꾸준히 매 년 1,000명 이상을 기록해 왔으며, 2016년에는 3만 명을 넘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인권 문제로서의 북한

 

▲영화 스틸컷 ⓒ장마당 세대


북한의 빈곤 문제가 특히 심각해 진 것은 1990년대부터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이후 10여 년간 식량난으로 61만 명의 인구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됐다. 식량난으로 사망자가 늘고, 출생자는 줄어든 영향이다. 이 때 그나마 남은 식량은 ‘정권에의 충성심’에 따라 배분됐다. 또, 최악의 기근이라 불리는 ‘고난의 행군(96~2000년)’ 시기에는 33만여 명이 더 사망했다[1]. 이처럼 극심한 상황 속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는 탈북자가 증가했는데, 이 때 중국 정부는 이들을 탈북자가 아닌 ‘불법 경제 이주민(illegal economic migrants)’으로 분류하여, 보호하지 않고 북한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여성 문제로 가면 더욱 심각하다. 북한인권위원회(HRNK: Human Rights in North Korea)에서 발간한 보고서 『인신매매: 북한에서 중국으로 도망친 여성들의 증언 (LIVES FOR SALE: Personal Accounts of Women Fleeing North Korea to China)』 에 따르면, 북한에서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탈북한 여성들이 중국에서 어떻게 권리도 의지도 없는 상품으로 취급 받는지를 볼 수 있다. 이들은 항상 북송에 대한 위협 속에서 학대 받고, 보호받지 못하며 난민으로써의 지위도, 법적 권리도, 아무것도 없다[2].  어떤 경우에 이들은 매매혼을 통해 아이를 낳은 뒤, 아이를 뺏기고 다시 다른 혼처로 팔려나가기도 한다. 실제로 중국에서 매매혼을 겪고 지금은 한국으로 구조된 한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내 몸을 포함해 모든 걸 잃는 느낌이었어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 의해서요. 저는 고작 18살이었어요.”[3]  탈북자 구조와 이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기 위한 내러티브를 만들고 있는 아쇼카 펠로우 단체 LiNK(Liberty in North Korea, 이하 LiNK)에서는 이러한 실상을 담은 단편 영화 <Sleep well my baby [4]>를 제작하기도 했다.



북한을 보는 시선과 북한의 밀레니얼

 

▲인터뷰 중인 북한 출신 청년들의 모습 ⓒ장마당 세대


한편, ‘북한’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전쟁 이후 70년 이상 지난 이 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김정은”, “북핵”, “한반도 문제” 등을 먼저 뇌리에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내러티브에는 단점이 있다. 거시적이고 문제 중심적 스토리텔링은 보는 사람들을 해결책이 아닌 문제에만 집중시킬 뿐 아니라, 이슈에서 유리시키기 때문이다. 북한을 “김정은”, “북핵”으로만 떠올릴 때 북한은 피로를 유발하는 골칫거리일 뿐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해야 하는 사람은 국제 정치 맥락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관련 부서 고위공무원이나, 이해관계국 정상들뿐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 2천 4백만의 북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LiNK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장마당 세대’는 한국에 정착 중인 북한이탈주민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북한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 무렵 태어난 북한의 밀레니얼, ‘장마당 세대’다. 이들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이라는 국가와 체제가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마저 채우는 데 실패했다는 씁쓸한 깨달음 뒤에 등장했다. 장마당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북한의 시장인 장마당을 보며 자라났고, 청소년기에 외제 영화를 담은 CD를 장마당에서 구해 학교 친구와 함께 숨어 보면서, 청년기에는 영화 몇 편이 담긴 usb를 밀수한 노트북에 꽂아 불을 끄고 몰래 보면서 성장했다.


즉,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시장경제체제를 겪으며 자란 ‘네이티브 자본주의 세대’인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억압적인 체제 하에서도 빈곤, 자유에 대한 열망 등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직접 무언가를 시작하고 행동해야만 했다. 영화에서도 돈을 벌기 위해 핸드폰 판매를 시작하고, 수입한 옷을 입기 위해 유행을 만들어내는 모습 등 누구보다 진취적인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깊숙이 체화되어, 출연자 중 한 명은 한국에 들어온 이후에도 창업을 통해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이렇게 “정말 대단하고 정말 되바른” 장마당 세대는 벌써 북한 주민의 44%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즉, 북한은 이미 어떤 변화의 임계점을 넘어선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그것을 앞당길 수 있다.

 

▲한국에 정착 중인 북한 출신 청년의 뒷모습 ⓒ장마당 세대


분단 이후 한국은 지난 70여년 간 전 세계에서 전례 없는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그리고 이는 상당 부분 한국 ‘사람’들의 역량에 빚지고 있다.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오래된 명제를 되돌아보면, 북한 사람들도 동일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들을 가로 막았던 것은 세계 어느 곳보다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정권과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북한 내에서 변화는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북한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 역시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한 축이다. 탈북이라는 엄청난 경험을 한 이들은, 정착한 곳에서의 경제활동으로 번 수익을 북에 남겨진 가족들에게 송금하고 있다. 실제 이 금액은 연간 1500만~2000만 달러(약 165억~22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북한의 가족들은 이 돈으로 중국 국경 근처에서 식량을 구하거나, 시장에서 국외의 가족과 연락할 핸드폰, 해외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영화가 담긴 usb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즉, 이 돈은 북한 내부에 ‘자유’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때 단순한 골칫거리가 아닌,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해진다. 바로 이러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북한 사람들이 그 잠재력을 발휘해 변화를 앞당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 영화의 말미 나레이션을 맡은 LiNK 박석길 한국지부 지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장마당 세대는 가능성의 세대라고 확신합니다.” LiNK, 여명학교, 그 밖에도 많은 단체가 북한 사람들의 잠재력을 북돋고 문제의 해결을 가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마당 세대 출연자 강민의 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너무 기본적인 거라 중요하게 생각 안 하는데, 북한 사람들도 사람이고, 눈을 보면 느껴지는 게 있어요.” 오는 4월에는 판문점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다양한 국제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남북관계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꿋꿋이 할 수 있는 일은 눈을 보는 것을 잊지 않고 변화를 앞당기는 일일 것이다.



기사 입력 일자: 2018-03-30


작성: 아쇼카 한국 어시스턴트 매니저 윤해림 / hyun@ashoka.org


<영화 ‘장마당 세대’ 상영회 안내>


아쇼카[5] 한국은 ‘모두가 체인지메이커’라는 기치 아래 ‘사람’들에게 내재된 잠재력을 북돋워 사회문제보다 해결책이 많아지는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매년 시급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뛰어난 사회혁신기업가를 아쇼카 펠로우로 선정해 이 임팩트를 사회에 확산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오는 30일 7시 헤이그라운드(서울시 성동구 뚝섬로1나길 5) 지하 1층 체인지메이커스 홀에서 영화 ‘장마당 세대’ 상영회[6] (아쇼카 한국/LiNK 서울 주관)가 열린다. ‘관객과의 대화’ 세션에는 박석길 LiNK 한국 지부장, ‘장마당 세대’ 출연자, BBC Korea 김수빈 기자가 함께하며 상영 후에 네트워킹 시간이 예정되어 있다.


아쇼카 한국 홈페이지

송하나(LiNK 대표) 아쇼카 펠로우 더 알아보기



[1] 중앙일보, 북한 ‘고난의 행군’ 5년 동안 주민 33만 명 굶어 죽어(2010.11.23)
http://news.joins.com/article/4695274


[2] Forbes, Lives For Sale(2009.04.30)
https://www.forbes.com/2009/04/29/north-korea-china-refugees-kim-jong-il-opinions-columnists-hrnk.html#7f8cce542ddf


[3] https://www.sleepwellmybaby.com/


[4] https://www.sleepwellmybaby.com/


[5] 아쇼카는 전세계 3,600여명의 뛰어난 사회혁신기업가의 글로벌 네트워크로, 누구나 체인지메이커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여 급변하는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모두가 체인지메이커인 세상’을 앞당기고자 한다.


[6] https://www.facebook.com/ashokakorea/posts/987113508118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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